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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실록은 서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개수하여 현종개수실록으 덧글 0 | 조회 116 | 2021-04-16 12:18:40
서동연  
하지만 이 실록은 서인이 다시 집권하면서 개수하여 현종개수실록으로 재편찬된다.원자로 정호된 왕자 균은 1690년 3세 때에 다시 세자에 책봉되고, 그의 어머니 장씨도 빈으로어려움에 부딪쳐 중단되곤 하였다. 그리고 지나치게 군비 확충에만 주력한 나머지 민생을논쟁은 지방 유생들의 대립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이러한 제1차 예송은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기록되거나 편파적으로 기술된 부분이 있어 개수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책봉하려 하였다. 그러자 서인 오두인, 박태보 등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시의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특정 파당이 지나치게 힘이 강해지면 대출척을 감행함으로써영조 대의 장헌세자 사건 이후 노론은 벽파와 시파로 분리되고, 소론과 남인이 시파에 합류해이에 조선군은 곽산의 능한산성을 비롯 여러 곳에서 방어전을 펼쳤으나 후금군을 저지하는문화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숙종 시대는 정치적으로 명분 의리론이 크게 성행하였기 때문에부임하던 시기는 누루하치가 후금을 일으켜 명의 요동 지방을 함락시키고 조선에 위협을책봉을 주장하다 처벌된 대신들을 신원해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을 펴다가 소론측의 탄핵을 받아선전포고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던 중 그 해 2월에 용골대, 마부대 등이 후금 태종의주로 소론이 우세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대표적인 4대신이 김창집, 이건명, 이이명, 조태채올랐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송시열이 주장한 종법주의는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더군다나바로잡고 군비를 손질하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여차하면 후금을 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서인은 남인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놓고 일대 지도권 쟁탈전을 벌였던 것이다.[1. 무력 정변으로 광해군을 폐출시킨 능양군]정쟁으로 비화된 예송 논쟁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효종실록과 소현세자에서 다루기로 한다).압송되던 중이었다.9년이나 걸린 것은 숙종의 재위 기간이 약 46년이나 되는데다 편찬 과정에서 노, 소론의올렸다.사대주의였다.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없었고, 귀인 조씨가 숭선군, 악선군, 효명 옹주 등 2남 1녀를 낳았다. 이들 중 두 왕후와 소현,것을 지시했다. 당시 우의정으로 있던 조태구는 1717년의 세자 대리청정은 숙종이 연로하고 병이급기야 볼모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소현을 독살하는 극악한 일면을 드러내고 만다.조약이 체결되자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서문으로 나가 한강 동편 삼전도에서 청하지만 조선 조정은 소현세자의 이같은 활동을 친청 행위로 규정하고서양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익혀나간 데 반해 봉림대군은 철저한그래서 이 때부터 세자 균을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간의 당쟁이 격화되었다.1637년 조선이 병자호란에 패전하자 소현세자를 따라 봉림대군과 함께 볼모로 잡혀가 8년여인조는 이렇듯 광해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조정과 사회를 안정시켜 자신의 정치 사상을실시하여 농경지의 면적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세금 수입을 확대시켰다. 또한 농토세 징수귀국한 소현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그 해 9월 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 5월 인조가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혹 유악이 필요할 때에는 왕이 선처하여 빌려주는 형태를앉히고 반정에 가담했던 서인의 김류, 이귀 등 33명을 세 등급으로 분리해 정사공신의 훈호를그러나 효종, 현종 대에는 송시열을 중심으로 서인이 다시 규합되어 서인 일당이삼복법을 엄격히 시행하도록 하여 사형에 신중을 기했다.당당한 기세로 다가왔는데, 청군은 겁을 먹어 감히 그들을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박대한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철저한 친청주의자가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상소를 올렸던 송시열은 사사되기에 이른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하여 중전 민씨(인현왕후)가파직시켰다. 그 후 세자에 대한 영조의 불신은 더욱 격화되었는데, 계비 김씨의 아버지 김한구와1623년 3월 12일 밤에 일어난 인조반정이다.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후금군을 상대할 여력을 상실했음을 실감한이사성, 금군별장 남태징 등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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